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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의 이야기(Hoo's story)

그림이야기(실화) 3. 귀신 소리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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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은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엮은 것으로, 지명이나 이름 등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어느 겨울.





언제나처럼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자마자

 먼저 준비하고 있던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즐기는 여행 스타일은, 뚜렷한 목적지 없이

 대충 '서해', '동해', '강원도' 이렇게만 정하고 

 일단 도시부터 벗어난 후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식의,

 애초에 계획이란 게 없는 여행이다.


이번에는 강원도다.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니

 아무래도 자주 가게 된다.





앞서 말한 대로 특별한 목적지가 없기에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 출발부터 느긋하게

 국도, 지방도를 따라 물 흐르듯 나아간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충 강원도와

 경기도의 어느 언저리에서 하룻밤을 난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캠핑의 바람이 불기

 전이라, 변변한 캠핑 장비도 없었을뿐더러

 별다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스타일 자체가 한 곳에 머무르는 것보다

 여기저기를 떠도는, 쉽게 말해 멈춰진 풍경보다

 움직이는 풍경을 더 좋아하기에 그야말로

 끊임없이 운전을 해야 하는 여행이다.

 텐트는 오히려 '이런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

 그저 운전하다 잠이 오면 적당한 위치에 차를

 세우고, 카페트가 깔린 널찍한 봉고차 뒤로 가,

 싸구려 침낭 두세 개를 껴입고 자는 것만으로도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푹 자니 아침 일찍 눈을 떠도 졸리지 않다.

 아마도 공기가 맑아서?


우린 대충 즉석 국에 즉석 밥을 말아먹고는

 또 다른 하루를 떠난다.





이름 모를 시골의 한적한 도로를 이른 아침에

 홀로 달리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하고 오묘하다.

 내가 마치 그 지역 사람인 양.


그렇게 토요일 하루를 이산 저산을 넘나들며

 가다 놀다를 반복하다, 어느 좁은 비탈진 산길

 앞에 멈춘다.





우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산길을 오르기로

 결정하고는 아직은 곳곳에 눈이 쌓여있는

 좁고 굽이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그러다 눈이 얼음으로 변해버린 구간을 만났는데,

 잠시 스노우 체인을 고민했으나 그대로

 올라가기로 하고 몇 번 '미끌' 하기는 했지만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당시엔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기도 하고 가격 또한 만만찮아서

 특별한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나 같은

 사람에겐 두꺼운 지도책 한 권과 GPS수신기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간혹 샛길이나 임도 같은 비공식 도로를

 만날 때면 오로지 감에 의존한 운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 길은 지도상에 '도로'로 표시가 되어

 있고 지방도와 연결까지 되어 있으니

 노면 상태에만 주의를 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굽이굽이 그렇게 정상을 넘어 한참을 내려오니

 웬걸, 길의 끝이 쇠사슬로 가로막혀있다.

 바로 앞에 지방도를 두고서.





잠깐 고민을 하다,

 이내 다시 되돌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쇠사슬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러나 한 겨울의 짧은 태양은 우리의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서쪽 큰 산 뒤로 금세 숨어버린다.





한층 추워지고 어둑해지는 산을 되돌아 오르며

 아까 지나왔던 그 빙판길을 걱정한다. 


 '아무래도 스노우 체인을 걸어야겠지?'





하며 정상에 다다랐는데, 아까 여기를 넘어올 때는

 그냥 지나쳤던, 작은 나무판자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OO 마을 700미터'





어두운 가운데도 그쪽이 길임에 확실했지만,

 누구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낙엽 수북한 급한

 내리막의 그 길이 그리 내키진 않아 곧바로

 지도책을 편다.


 "음.... 지도에는 안 나오는 길이네.... 어쩌지?"





하지만 분명하게 적혀있는 이정표를 믿고

 천천히 낙엽으로 뒤덮인 그 '비공식적인 길'을

 내려간다.





비포장 길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금 이 길은 뭔가 다르다.

 마치 스펀지 위를 가는 듯 바퀴가 쌓인 낙엽

 아래로 푹푹 꺼진다.

 경사조차 너무 심해, 이 길을 되돌아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느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선,

 차가 다니라고 뚫은 길인데 별 일 있을까 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한 100미터 정도 내려왔을까.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틀어야 하는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한 5~6미터쯤 돼보이는

 자투리 길이 낭떠러지를 앞에 두고 끊겨있다.





오른쪽으로 겨우 틀어 이 급격한 비탈길에서

 내려오자 다소 완만한 길이 바로 옆 절벽을

 따라 쭉 나 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하지만, 이런 희망도 무색하게 얼마 내려가지 못해,

 산사태로 끊어진 길 앞에 멈춰야 했다.


차에서 내려 끊어진 길을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다시 되돌아 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걱정 가득한 여자 친구를 안심시키며

 후진으로 좀 전의 그 갈림길까지 다시 왔지만,

 과연 이 봉고차로 여기를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일단 차를 최대한

 왼쪽 자투리 길 끝으로 붙인 다음

 힘껏 올라가 본다.





예상한대로 차는 힘 한 번 못 써보고

 엔진이 꺼진다. 


다시 시동을 거니 GPS 수신기가 부팅이 되면서

 젊은 아가씨의 낭랑한 디지털 합성 음이 들린다.


차는 다시 슬금슬금 뒤로 후진해 처음 출발지로

 오고, 그다음 변속기 1단, 다시 한번 비탈길을

 향해 돌진해 보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차는 맥없이 '푸륵' 시동이 꺼져버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GPS 아가씨의 해맑은

 목소리. 





이 상황이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던 긴장 가득한

 여자 친구에게 애써 태연히 안심을 시키고 난 뒤

 다시 한번 같은 식으로 시도를 한다.

 뭐 다른 방법이란 게 있을 수가 없었다.

 주위는 전부 낭떠러지이니.


그런 식으로 GPS 부팅 소리만 여러 차례.

 어쩌면 여기서 하룻밤을 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료마저 바닥이 난다면

 그땐 정말 최악이다.

 게다가 폭설까지 덮친다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힘껏 달려 오른다.





 '푸륵'

당연한 것처럼 엔진은 다시 꺼지고 주저없이 또
 시동을 건다. 그때,




 "워울라울라쿠라부라...."


갑자기 차 안에 울려 퍼지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




아니 그냥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전

 인기 공포 드라마 'M'에서 나온 귀신 목소리

 같았다.


나도 모르게 얼른 시동을 껐다가 다시 시동을

 켜보았다. 마찬가지였다.

 그 흉측한 소리는 아마도 GPS 수신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당연히 여자 친구는 사색이 됐겠지만 사실 그 순간

 나는 여자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정신이 아니었다.


당시, 여러 차례의 시도 속에 긴장감은 짜증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잔뜩 겁먹어있는 여자 친구에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던 상황에,

 갑자기 이 괴물인지 귀신인지의 음성이 들린

 것이라, 순간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해제된 듯

 갑자기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 회괴한 현상을 향해 욕을 퍼붓는다.


  "이런 XX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웬 X같은

 것까지 쳐 와가지고 개지랄을 떨어?!"


이 모든 걸 겪고 보고 있는 여자 친구는 과연 누가

 더 무서웠을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X발 X발 거리며 차를 뒤로

 뺐다가 가속 페달을 냅다 밟고 다시 한번

 비탈길을 향해 달려 오른다.


그런데?





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탈길을 달려 오르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건 전조등에 비친 수북한 낙엽 쌓인

 길 뿐 칠흑 같은 어둠을 오직 달려 올라갈 뿐이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그 길을 겨우 벗어났고,

 그제서야 그 괴물 같은 소리며 갑자기 차가

 떠밀리듯 올라온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리곤 여자 친구가 한 말.


 "아까 비탈길 옆에 무덤 봤어?"

 "아니 못 봤는데?"

 "아까 그 이상한 소리 날 때 옆을 봤는데

 옆쪽에 무덤이 있더라구... 난 같이 본 줄

 알았는데..."





살아오면서 몇 번 귀신이랄까 뭔가 요상스런

 경험들을 해 봤지만, 여전히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로선 그때의 그 소리조차 귀신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여러 번 시동을 켜는 과정에서 뭔가

 GPS 수신기의 오류가 생겼던 걸 꺼라 믿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무덤 역시 어느 산에나 있는 그런 무덤이

 그 상황에 어울려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 한 구석에 그

 당시의 소리가 단지 기계의 오류만은 아니라는

 찌꺼기로 남은 데는,

 과연 테이프를 재생시키는 방식이 아닌 디지털

 데이터의 재생이 그런 식으로 괴물 목소리처럼

 될 수 있느냐는 의심과,

 여러 번의 테스트에도 전혀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GPS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일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 제일 이상한 점은 그 귀신 소리 나

 뜬금없는 무덤이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꿈쩍 않던 차가 갑자기 누구에게

 떠밀리듯 올라갈 수 있었느냐이다.

 난 그게 가장 이상하고 신기했다.


어떻든, 천만다행으로 그 난감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것이 만일 귀신의 도움이었다면

 그 귀신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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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유튜브에 올려놓은 이 이야기의 동영상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