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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의 이야기(Hoo's story)

그림이야기(실화) 2. 생에 첫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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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은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엮은 것으로, 지명이나 이름 등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림이야기(실화) 2. 생에 첫 도시락.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 얼마 안된 1981년


 어느 봄.



 이제 4학년들도 도시락을 싸오는 걸로


 결정이 났다.






그간 넘치는 학생 수에 비해 교실이 부족했던


 관계로 4학년까지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왔었는데, 이번에 새로 지은 교실동 덕에


 4학년도 도시락을 싸다니게 됐다.






이제 뭔가 진짜 고학년이 된 느낌이 나긴 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날의 하굣길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란 사람은 생활비 한 푼


 안 남기고 멀리 고기잡이 나간 지 벌써 여러 달.



 남겨진 네 식구는 그야말로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며 근근이 이어나가던 때였다.






물론, 엄마는 갯가에 나가 조개를 캐 시장에 내다


 팔곤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리 몇 되를


 겨우 쥐고 올뿐, 그저 우리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간장 비빈 꽁보리밥에


 콩자반을 아껴 먹는 이외의 도리가 없었다. 



 "내일부터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고?"



난감해 하기는 엄마도 다르지 않았다.


 당장 도시락통이 문제였을 것이다.


돈만 있다면야 가게에 가서 사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러지를 못하니....






아침이 되고 눈을 뜨자마자 도시락 생각이


 엄습한다. 하지만 쉬이 엄마한테 말을 못 꺼내고


 부스스한 얼굴로 부엌 문기둥에 서서 엄마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보고 있다.



"갖고 가...."






부엌에서 방으로 들이 민 하얀 손수건에 쌓인


 도시락.


엄마는 차마 더는 말을 못 잇고, 나는 받은


 도시락을 무심히 가방 뒤편에 푹 쑤셔 넣는다.



오늘따라 등교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다.






오전 내내 도시락 생각에 도무지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왔는지


 안 싸왔는지를 검사 한다는 말 때문에 마음이


 더 심란하다.



참지 못하고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살짝


 도시락을 엿보기로 했다.


매듭 진 손수건을 풀어헤치자 칠이 벗겨지고


 구겨진 양은 사각 도시락이 드러났다.






이건 아버지가 배 타고 낚시할 때 갯지렁이를


 담던 그 미끼통.


벌써 기분이 확 나빠졌지만 그래도 그 미끼통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뚜껑을 살짝 열어


 보았다.(아이들 눈에 최대한 안 띄어야 하니까)



'어?'



밥이 안 보였다. 통 뚜껑을 아주 살짝 걸쳐 열었을


 뿐이지만 분명 있어야 할 밥이 안 보였던 것이다.


더 궁금했지만 이내 뚜껑을 닫고 손수건


 매듭까지 다시 지은 다음 책상 밑 서랍 깊숙이


 넣어 버렸다.



"자~ 선생님이 말했듯이 지금부터 도시락


 검사를 할 거예요~ 다들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요."



마침내 '그 시간'이 됐다.






교실은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도시락을


 꺼내는 소리로 분주하지만 난 미동도 없이


 꽃꽃이 앉아만 있다.



예정대로 선생님은 1 분단 맨 앞부터 쭉 뒤로


 훑으며 나아가고 3 분단 맨 앞에 앉은 나의


 심장은 쓸데없이 벌렁거린다.



내 기억에 그리 나쁜 선생님으로 기억되진 않지만,


 왜 그 당시 도시락 내용물까지 확인하셔야만


 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넌 왜 도시락 안 꺼내?"






혼자 빈 책상으로 멀뚱히 앉아있는 내 앞에 선


 선생님, 갑자기 조용해진 교실.


저절로 목 뒷덜미와 귓등까지 빨개졌지만,


 뭔가 괘씸하단 표정을 짓고 있는 선생님께


 뭐라도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도시락 안 싸왔는데요...."



 "뭐? 오늘부터 오후 수업도 하는데 밥도 안 먹고


  어쩌려고 그래? 그래서 선생님이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라며 뭐라 더 덧붙여 설교를 하려는데,



 "선생님 쟤 도시락 싸왔어요. 제가 아까 봤어요"



옆에 있던 여자 짝꿍이 냉큼 이른다.


이와 함께 교실 분위기는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뒤에 있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내민다.



 "저기 있다! 선생님, 도시락 책상 서랍에 있어요!"



뻘건 얼굴로 앉아 있던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떨구고, 이어서 선생님의 다소


 밝아진 음성이 들려온다.



 "어? 도시락 가져왔어? 근데 왜 도시락을


 안 싸왔다고 했어? 자, 이리 꺼내봐. 어서."



이젠 아예 내 옆에까지 몰려온 개구쟁이 녀석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손수건에 싸인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 자 조용조용~"






선생님이 손수건을 풀자, 내용물 보다도 더 보기


 싫은 낡고 헤진 양은 도시락이 드러났고,


 주변 아이들은 금세 싸해진다.


이어 선생님이 뚜껑을 여는 순간에는 나 조차도


 그 궁금함에 힐끗 올려다본다.




몰려든 아이들에겐 그게 다였다.



뚜껑이 열리자 아이들은 저마다 말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 머쓱해진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표정이랄까 애매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살짝 쥐더니,






 "자, 자, 보리밥은 몸에 좋은 거예요.


  건강에 좋으니까 되도록 엄마한테 잡곡밥을


  싸 달라고 하세요.


  자, 다음."



그렇게, 펼쳐진 하얀 손수건 위에 올려진


 쭈그러진 양은 도시락엔, 거무튀튀한 보리밥과


 새로울 것 없는 검은 콩자반이 함께 있었다.


 한쪽으로 쏠려 찌부러진 모양으로...





아, 물론 그날 도시락은 몇 숟갈 뜨지도 않은 체


 끝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다음 날 부터 나는


 한동안 도시락을 싸 가지 않았고, 선생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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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유튜브에 올려놓은 이 이야기의 동영상 버전입니다.